기원전 399 년에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터무니없는 고발과 재판이 내려졌다. 5,065,438+0 명으로 구성된 법정은 결국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아 신성모독, 부패, 오도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소식을 듣고, 그의 학생과 친구들은 매우 초조해서 교대로 감옥을 방문하고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도피를 거부하고, 태연히 죽음의 도래를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삼았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 재판은 의심할 여지 없이 터무니없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짓밟음이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이 아니었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체 사건은 아테네 도시 국가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고, 재판 절차는 복잡하고 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와 달리 아테네의 법정에는 법관이 없고 재판장만 있어 재판을 조직하고 법정질서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다. 판결의 권력은 배심원단에 속한다. 배심원들은 시민들 사이에서 제비를 뽑아 결정했다. 예를 들어, 매년 초,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경쟁 당시의 배심원에 지원했고, 추첨을 통해 자원봉사자 중에서 6,000 명을 선정하여 그해의 배심원으로 삼았다. 개정의 경우, 도시 관리들은 각 사건을 심리하는 데 필요한 배심원의 규모를 미리 확정하고, 5 명에서 2000 명까지 다양하다. 그런 다음 6,000 명의 배심원들 중에서 제비를 뽑아 당일 필요한 배심원의 총수를 뽑는다. 재판 전에 이 배심원들은 추첨을 통해 서로 다른 법정에 배정되어 서로 다른 사건을 심리했다.
법정의 재판도 현대와 다르다. 먼저 원고와 피고는 자기변호를 하고 증거를 제공한 후 배심원단이 1 차 투표를 하여 피고가 유죄인지 여부를 결정하였다. 만약 피고가 다수표를 얻는다면, 그는 결백한 이름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원고가 얼마나 많은 표를 받아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그가 얻은 표수가 총 표수의 5 분의 1 미만이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 조치는 악의적인 무고를 막기 위한 것이다. 유죄와 무죄 득표가 같으면 피고는 무죄를 선고받을 것이다. 피고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원고와 피고는 각각 구체적인 형벌을 제기한 후 배심원단이 그 중 하나를 최종 형벌로 선출하도록 투표한다. 이런 재판 방식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그 합리성이 있다. 원고와 피고는 자신의 형벌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능한 합리적인 형벌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심판하는 배심원단은 500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차 투표에서 배심원단은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280 표에서 220 표로 인정한 뒤 그에 대한 처벌도 불합리했다. 그를 동정했던 일부 배심원들이 원고가 제기한 형벌을 선택해 결국 360 표 대 140 표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배심원단 투표만으로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혐의는 범죄 행위도 직접적인 손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재판은 실체적으로든 절차적으로든 그 시대의 법률 규정에 완전히 부합한다. 그 시대의 법은 불공평했지만 불공평한 것은 판결이 합법적인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적 판결이기 때문에 시민에게 구속력이 있고, 어떤 시민도 복종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