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잔혹함과 착취. 아시리아 제국의 통치자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정복당한 지역의 인구를 다스리고, 그 지역의 원자재를 압착하여 아시리아의 핵심 지역으로 운송하여, 현지 농산물과 완제품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여 그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 주었다. 과거 양강 유역에서 탄생한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해 볼 때 아시리아의 법은 육형으로 가득 차 있어 죄수들을 고문해 죽게 하고 말을 듣지 않는 노예는 살해돼 껍질을 벗길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독려했다. 전쟁은 인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시리아는 출산을 장려하고, 여자가 고의로 유산을 하면 낙인 찍힌 처벌을 받게 된다. 아시리아 귀족과 평민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피비린내 나는 학살 장면을 보고 내면의 전투성을 높여야 한다. 여자는 지위가 매우 낮아서 남자는 일부다처제를 할 수 있고, 국왕은 무수한 비를 가지고 있다. 이 나라는 극히 잔혹한 정책을 봉행하고 있다.
둘째, 군사를 중시하다. 아시리아 제국의 모든 남성은 입대할 수 있으며, 군 복무는 일반적으로 여름에 진행된다. 이때 농업 임무가 적고, 산구가 원활하며, 강이 통과되고, 상비군이 후기에 언제든지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티그레팔라사르 3 세 (746-727) 시대에 그는 군대를 재편성하여 아시리아에서 모집한 군대를 전문 훈련병종이 많은 상비군으로 대체했다. 전차, 기병, 중보병, 경보병, 공성병, 공병, 전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당시 아시리아는 다른 나라보다 앞선 야금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대량의 철제 무기를 건설하고 보편적으로 군대를 장비했다. 모든 국가기관은 모두 군사기관의 구성 요소이다. 아시리아 군대의 총수는 아시리아 사회의 부유하고 권세가 있는 귀족이다. 그들은 왕과 전리품을 나누다가 나중에 이 귀족들을 환관으로 대신하여 통치자가 되어 왕조를 세우는 것을 막았다.
셋째, 다국적. 신아시리아 제국은 다양한 기원의 민족과 부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아시리아 제국의 인구 추방 정책은 매우 보편적이다. 만약 한 지역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지역 전체의 사람들이 옮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