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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 치사 2- 태양 아래 반딧불이에 대한 논평
영화에서 작은 벌레가 물었다. 반딧불이는 왜 불빛 아래에서 빛을 내지 않는가?

아버지는 그들의 빛이 너무 약해서 어두운 곳에서만 그들의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생활에서 작은 인물과 권력의 대결은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에서 임일랑은 스스로 큰 연극을 연출하여 권력의 행동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모두들 진상을 알고, 권력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여론의 압력을 형성한다. 권력도 응당한 처벌을 받았고, 정의는 결국 어둠을 이겼다.

현실이 영원히 영화처럼 됐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사르딘이 자신의' 심장' 을 들고 엄마와 버그를 찾는 것을 보고, 버그를 위해 심장을 이식할 수 있다고 말했고, 어머니에게 임일랑에게 전화를 걸어 항복을 권했다. 여기를 보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르틴이 그들을 속였다면, 전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임일랑은 항복했지만 아이는 죽었다. 그들은 임일랑과 그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수술 중 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코 진실을 알지 못하고 권력의 통제 하에 살고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식은땀이 나서 어둠이 나를 덮고 있는 것을 느꼈다. 현실은 내가 말한 그런 가설이 일어날 수 있을까, 권력은 항상 진실을 묻을 것이다. 우리처럼 보잘것없다면 얼마나 슬프고 불쌍한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지혜명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정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딧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 어두운 구석, 일반인들이 열심히 살며 자신의 빛과 열을 발산하고 있다.

반딧불이는 햇빛 아래서는 사라지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평온함 속에서, 그들은 투명인간이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 미약하더라도 어둠을 비출 수 있다.

어둠은 일시적이며 정의는 결코 결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 | 늦여름 애매한 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