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의 경우 연쇄범죄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범죄와 폭력의 성격은 단연 가장 심각하다. 살인자는 심리적 왜곡을 갖고 범죄가 주는 쾌락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를 선전하는 살인자다.
길림성 이란성 연길시에 거주하는 기혼 한국인 진춘리는 전과가 있으며 강도혐의로 체포됐고, 1991년 출판됐으나 8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뒤 침묵을 지켰다. 투옥 4년 뒤인 1995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고, 점차 피해와 살인까지 확대됐던 그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질러 2002년 1월 체포됐다.
김씨는 대량 학살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1995년 5월 출소한 후 처음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는데, 이때 피해자들에게 가벼운 부상을 입혔다.
1998년 3월부터 시작해 1998년 3월부터 1999년 5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히고 2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두 번의 살인 이후 진춘천은 더욱 오만하고 포악해졌고, 범죄를 저지르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는 1999년부터 여성 피해자 7명을 성폭행하고 10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9명이 사망하는 등 수많은 강간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현장에는 단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경찰이 찾기 어려워 한때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김춘리는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잠시 후인 2001년 10월 24일 오전에도 김춘리는 살인을 저질렀다. 김춘리는 집안에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로서 잔혹한 주인에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김춘리는 범행 후 두 달 뒤인 2001년 12월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고, 한밤중에 집에서 총격을 당해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피해자 여성의 하반신과 10여 개의 상처가 찔리고 침실 벽에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은 경찰에 대한 도발이자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살인자를 상징하는 벽에 붙은 큰 표시에 대한 불만이 경찰에 새로운 생각을 주었다. 경찰은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살인자가 전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우울한 환경이 원인일 수도 심리가 왜곡됐다는 지시에 따라 경찰은 다수의 사람들을 조사한 뒤 마침내 한 마을에서 용의자 진춘리를 찾아냈다.
조사 당시 인터뷰한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웃들은 어느 날 밤 진춘리가 마당에 있는 이불을 칼로 베는 것을 목격했고, 당시 일부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집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남성이 2001년 1월 20일 오후 5시 자신의 집에서 김춘리 용의자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춘리는 구속된 뒤 처음에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경찰이 여러 차례 제소했고, 결국 자백을 한 공안국 국장이 심문에 참여해 자백했다. 범행 사실을 규명하고 범행 장소를 확정한 진춘리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4월 25일 법에 따라 처형됐다.
살인범 김춘일은 4년 동안 14명의 희생자를 살해하는 등 수십 건의 범죄를 저질렀으며, 수많은 사람을 성폭행하고 강탈하고 부상을 입혔다. 비록 그는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끼친 피해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